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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인문학에서 성현의 지혜 찾기

몽유연행록(夢遊燕行錄) 자서 본문

고전 기행/몽유연행록(夢遊燕行錄)

몽유연행록(夢遊燕行錄) 자서

고전 인문학 매니아 2023. 9. 8. 14:14

몽유연행록은 이유준이 1848년 동지정사 사절단 수행원으로 다녀오며 쓴 연행일기입니다.

 

표질(表姪 외조카)인 학사(學士) 윤근지(尹近之)가 서장관(書狀官)의 개인수행원이라 할 수 있는

 

반당의 직책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이유준은 연행의 여정을 봉래산을 보고 다녀오는 길의 꿈처럼 연경 여정을 꿈에 비유하였습니다.

 

몽유자라고 자호를 붙인 이유와 연행일기를 몽유연행록이라 칭한 이유가 서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몽유연행록(夢遊燕行錄) 자

내가 신묘년(1831, 순조31) 봄에 봉래산(蓬萊山)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한번 꿈을 꾸었는데,
연경(燕京)에 가서 유람을 하는 것이었다.
깨어난 뒤에도 산천이 선명하게 그대로 기억이 났다. 이로 인하여 마음속으로 스스로 말하기를,
“봉래산은 우리나라 강역 안에 있으니 만약 한번 보고자 한다면 바로 울타리나 벽 사이의 물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경과 같은 곳은 다만 까마득히 멀 뿐만 아니라,
한 줄기 마자수(馬訾水) 강물이 동서(東西)로 가로질러 하늘이 정한 경계가 된 곳이다.
우리 같은 부류는 관료가 아니라면 가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없는 곳이다.
그러니 잠귀신[睡魔]에게 희롱을 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고서, 마침내 스스로 호를 지어 ‘몽유자(夢遊子)’라 하였다.
 
18년이 지난 무신년(1848, 헌종14) 겨울에 표질(表姪 외조카)인 학사(學士) 윤근지(尹近之)가 서장관(書狀官)으로
연경에 가게 되었다.
병을 앓고 난 뒤의 긴 여정이라, 도와줄 사람이 없을 수 없어 나에게 함께 동행해 주기를 청하였다.
나는 비록 부모님이 연로하셨으나 의리상 사양할 수 없기에 드디어 함께 출발하게 되었다.
이때 비로소 예전의 꿈이 허망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대개 연경은 천하의 북쪽 한 귀퉁이이다.
사람들이 이른바 ‘장유(壯遊)’라고 말하는 것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좁은 안목에서 말하는 것일 뿐,
남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하기에는 진실로 부족하다.
그러나 요양(遼陽)과 심양(瀋陽) 시가지의 장대함과 산해관(山海關)과 계주(薊州)에 있는
누대(樓臺)의 승경을 두루 유람하면 역시 한번 마음을 장쾌하게 한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연로(沿路)의 번화함과 이국(異國)의 풍물들이 모두 한바탕의 꿈과 같았으니,
바로 오늘의 유람이 진짜 꿈이요, 지난날의 꿈은 꿈속의 꿈임을 알게 되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무릇 황금 인장(印章)을 품고 붉은 인끈을 매고,
청운(靑雲)을 타고 대로를 달리는 자들 역시 꿈의 세계에 불과할 뿐이다.
어찌 가소롭지 않겠는가.
 
집으로 돌아와서부터 산천과 그 여정을 기록한 것과 시로 읊은 작품을 합쳐 약간의 편을 모아 한 책을 만들었다.
제목을 ‘몽유록(夢遊錄)’이라 하여, 세상의 선각자(先覺者)들이 한번 웃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몽유자 쓰다.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고전번역원의 자료는 수익창출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