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인문학에서 성현의 지혜 찾기
송우재에게 올리는 문목[上宋尤齋問目] 본문
하곡집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양명학자였던 정제두(鄭齊斗)(1649~1736)의 문집입니다.
내집에서는 사서삼경 등 경학에 대한 저술을 다루었고 외집에서는 역학, 천문, 지리를 모았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핸드폰, 이메일, 인터넷 망의 발달로 의사소통와 정보공유가 매우 빠릅니다.
이에 반해서 조선시대에는 서신교환, 편지, 서찰 등 제한적인 통신으로 가치관과 철학을 교류한 듯 합니다.
송우재에게 올리는 문목에서는 '답서(答書)에 이렇게 말하였다.'는 표현이 자주 있습니다.
문답 서신의 과정 을 통해서 학문과 주어진 현실 적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온고지신이라는 옛 말이 있습니다.
옛 것이 무조건 옳지는 않지만 수용해야 할 것이 있다면 적극 받아들여 내것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현대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육체적으로 편리한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습득과 기능과는 다른 차원에서 심신의 안정과 수양 목표는 좀 더 가다듬어 나가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하곡집의 양명학적인 도학 사상을 읽어봅니다.
송우재에게 올리는 문목[上宋尤齋問目] 발췌
장양(張良)에게는 진(秦) 나라가 원수이므로 한(漢)이 진을 멸하고 일어난 다음 그가 한을 섬김은
신하의 도리에 그릇되지 아니한 듯한데
귀산(龜山 명도(明道)의 문인 양시(楊時)의 호)은 “자방(子房 자양의 자)의 뜻이 한(漢)을 위해 원수를 갚는 데 있고
고조(高祖)를 섬김은 본심이 아니다.” 하면서,
‘그의 진퇴(進退)가 조용[從容]하다.’는 정자(程子)의 말을 끌어 실증을 대었으니,
이것은 과연 한 고조를 섬긴 것을 그르다고 한 것입니까?
군신(君臣)과 부부(夫婦)는 의(義)를 주로 하는 것이므로
맹자(孟子)는 “임금이 신하를 흙ㆍ쓰레기같이 보면, 신하는 임금을 도적ㆍ원수같이 안다.” 하였고,
옛적에는 여자가 남편에게 쫓겨나면 남편의 친족에 대한 복(服)을 입지 아니하였으니
그것은 이미 절연되었으므로 앞으로 개가해 갈 것이기 때문이라 하겠지요.
이런 뜻으로 본다면 후세와는 같지 않은 점이 많았는데
왕촉(王觸)의 말이 있은 뒤로부터 더욱 바꿀 수 없는 떳떳한 도리로 알아 왔으니,
이것은 천하를 집으로 하고 한 남편을 따르는 것을 귀중히 여기게 된 때문에 사세(事勢)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고대의 성현들이 도리어 이런 일에 삼가지 않았던가요?
네 가지 끊음[絶四]에 있어서 고집[固]과 기필[必]이란 것은 사사로운[私]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까?
비록 의리에 지당한 일이라 하더라도 ‘고집’과 ‘기필’은 해서 안 된다는 것입니까?
답서(答書)에 이렇게 말하였다.
의(意)ㆍ필(必)ㆍ고(固)ㆍ아(我)의 주(註)에, ‘의’는 ‘사사로운 뜻[私意]’이라 하였다.
그러면 그 아래의 ‘필’ㆍ‘고’ㆍ‘아’ 세 가지도 이 ‘사사로운 뜻’으로 일관되었을 것은 물론이다.
만약 의리의 지당한 것에 대해서까지 고집하고 기필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하면,
성현이 어찌하여 ‘선(善)을 택하여 고집하라.’고 말하며, 또 어찌하여 ‘구하면 반드시 얻는다.’고 말하겠는가?
생각건대, 만약 사사로운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무의(毋意) 두 자만으로 이미 다 되었는데
왜 반드시 고(固)니 필(必)이니 하여 그런 것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가?
아마도 비록 정당한 것일지라도 고집하고 기필하는 뜻이 있으면 이미 이것은 사사로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선을 택하여 고집하라 한 고집은 그 지키는 바가 독실함을 말하는 것이요
의식적으로 고집함을 말한 것은 아니다.
《주역(周易)》에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느끼면 드디어 통한다.[寂然不動感而遂通]” 하였고,
정자(程子)는 “확연히 크게 공평하여 사물이 오면 따라서 응한다.[廓然大公 物來而順應]”고 하였고,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마음에 한 가지 사물도 있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사물에 매이게 되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
혹 일이 오기 전에 기대하거나, 혹 이미 응(應)한 일을 마음속에 오래 두거나,
혹 현재 일에 응할 때 뜻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하면 모두 사물에 얽매이게 된다.” 하였으니,
또 말하기를, “어떤 사물을 마음속에 두면 다른 사물이 올 때 그것을 바로 응하지 못한다.
성인의 마음은 맑고 허명(虛明)하여 사물을 따라 그때그때 응하므로 원래 아무런 사물도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주자의 설은 여기까지이다.
대개 성현의 뜻은,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유지하고자 하며 다만 사물에 따라 응해 줄 뿐이요
그것을 마음속에 매어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 밖으로부터 오는 사물에 응수하는 것을 논한 것이요
내 속으로부터 일으켜 생각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은 아닙니다.
무릇 일에는 마땅히 마음속에 기억해 두어야 하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이 많으니,
부형의 나이를 기억한다든가 친구의 부탁을 받았을 때 어찌 잊어서 되겠습니까?
어떤 일은 마땅히 닦아야 할 것이 있고, 어떤 일은 마땅히 실행해야 할 것이 있고,
혹은 장차 행하려 하나 기다려야 할 것이 있고 또 이미 시작했으나 마치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미리 경영하고 계획하여 마음에 간직해야 할 것이요,
여느 긴요치 않은 세세한 일처럼 생각 없이 그때그때 응접해서 될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만약 긴요하고 긴요하지 않은 것을 가림이 없이 일체 마음속에 남겨 두지 않고
반드시 일이 눈앞에 닥쳐 온 다음에 응해야 한다면 이미 때를 놓치어 헛되이 말아 버릴 염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미리 스스로 계획 경영하여 항상 마음에 두고 있으면
여러 가지 번잡한 생각 때문에 마음속이 편안하고 고요한 때가 없게 될 것이니
성현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야 마음이 번잡해지거나 사물을 매어 두는 병통도 없고
또 일을 헛되이 말아 버리는 폐단도 면할 수 있겠습니까?
답서에 이렇게 말하였다.
이 글에 인용한 여러 설(說)들은 다 옳다.
그러나 물은 뜻을 자세히 보건대, 그 요점은 밖에서 오는 사물에 수응하는 것과
내 속으로부터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같으냐 다르냐 하는 데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로부터 생각을 일으킨다 해도 그것이 어찌 밖의 사물로 인해서 일으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상고(上古)의 일을 생각한다 해도 상고도 역시 밖의 사물이요,
비록 하늘 밖의 일을 생각한다 해도 하늘 바깥도 역시 밖의 사물이다.
천리(天理)인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나 내 마음의 사단(四端)ㆍ칠정(七情)도 사물이 아님이 없다.
어찌 사물을 버리고 내가 따로 일으키는 생각이란 것이 있겠는가?
생각이 사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인 줄을 안다면 그대 편지에 의심된다고 한 것들은 다 얼음 녹듯이 풀릴 것이다.
이 뜻은 율곡 선생이 퇴계의 말을 논변한 글에 자세히 말하였다.
생각건대, 《주역》에 말한 적연(寂然)이나 정자가 말한
확연(廓然)은 마음에 사욕이 없어서 고요하고 매달린 데가 없다는 뜻이요 사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 심체(心體)를 두고 말하는 것이요 그 사물을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로 말하면 사람의 마음에 언제나 있는 것인데 어찌 사물에 대한 생각을 끊고 고요하기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마음에 사물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이요,
다만 사욕이 없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사욕이 없으므로 그 본체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이다.
주자가 말한 바 마음속에 어떤 사물도 두어서는 안 된다. 도 역시 사욕의 얽매임이 있을까 경계한 것이다.
심체(心體)가 과연 얽매인 바 없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한다면
사물에 대한 생각이 아무리 많더라도 고요함에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이것이 정명도(程明道)가 《정성서(定性書)》에서 말한 뜻이다.
정자는 “사람의 마음은 두 군데로 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본래 일마다 하나를 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사무가 번다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사무를 폐할 수도 없고
글 읽고 이치를 강구하는 것도 늦출 수 없는데, 이 일에 전심하면 저 일에 전심할 수 없고
저기에 들어가면 여기에 들어갈 수 없어서 분분히 이것도 하다가 말고 저것도 하다가 말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두 가지를 다 전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장차 정력이 나누어지고 뜻이 갈라져서 마음을 두 갈래로 쓰게 될 염려가 없지 않습니다.
두 가지가 다 공부이면서 서로 방해됨이 이와 같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서에 이렇게 말하였다.
정자께서 구사(九思)에 대하여 각각 그 한 가지에 전일(專一)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었으니,
이것을 알면 그대가 말하는 병통에 대한 약을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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